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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건 시점에서 시작한다. (자의든 타의든)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옆에 있는 사람하고 하는 것이 결혼이다라는 시니컬한 경구도 있지만, 좋은 때를 만난다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않은 행운이다. 그리고 그 때가 좋은 때였다는 걸 아는 것은 늘 지나간 후의 복기 과정에서이다. 때를 알고 내리는 비가 좋은 비인 것처럼 사랑도 그와 같으리니 시간을 저울질하지 않아도 된다면 엇갈림의 미로에서 길을 잃고 끝내 회한으로 남지만은 않을 것이리 허진호 감독의 다섯번째 영화는 전작들보다 훨씬 가볍다. 봄의 기운이 느껴지는 발랄함이 따스한 빛과 감미로운 기타 소리에 휘감겨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두둥실 떠오르게 한다. ![]() 사랑이란 늘 그렇듯이 '우연히' 시작된다. 담당자의 신혼여행으로 우연히 대신한 출장길, 우연히 들른 관광지에서 우연히 만난 옛 연인. 오프닝에서 동하가 시차에 맞춰 시계바늘을 뒤돌리듯, 그곳에서 시간은 옛 기억을 봄바람 속에 싣어 전해온다. 데이트는 경쾌하다. 설명이 충분하지 않아 얼마만에 만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서로 옛기억을 시험해볼 정도라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둘의 사귐의 깊이와 이별의 상처가 그리 크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당돌한 매력의 메이와 부드러운 감성의 동하가 주고받는 대화들은 로맨틱 코메디의 그것들처럼 상큼하다. ![]() 감독의 전작 봄날은 간다와 호우시절의 대나무숲신을 비교해보면 두 영화의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다. 흔들리고 불안한 영혼을 잠시나마 어루만져 주는 청록의 푸르름을 강조한 봄날은 간다와 따스한 햇살 속에 다시 찾아온 사랑을 꿈꾸게하는 호우시절의 대나무들은 화면의 질감으로 차이를 드러낸다. ![]() 투숏이 중심이 될 수 밖에 없는 멜로영화에서 균형을 유지하고 인물들의 미묘한 감정을 앵글로 표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김병서 촬영감독은 8월의 크리스마스의 고 유영길 촬영감독, 봄날은 간다의 김형구 촬영감독같은 쟁쟁한 선배들에게 뒤지지 않을 영상미를 보여준다. 사랑을 맺음으로 끝나던 전작들과는 달리(외출에서도 사랑은 '우리 이제 어디로 가죠?'라는 미묘한 여운이 깃든 의문으로 끝난다.) 호우시절은 잃어버린 줄 알았던 그 지점에서 다시 시작한다. 세상의 끝인 것처럼 아득한 소실점 너머에도 언제나 대지와 바다가 존재하는 것처럼. 좋은 때를 알고 내린 봄비가 만물을 소생시키는 것처럼 사랑의 싹도 그렇게 움트게 한다. 생각지도 않았던 때에 생각지도 않았던 장소에서.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단편으로 기획했다 장편으로 확장된 프로젝트인 탓이겠지만, 쓰촨성 지진으로 남편을 잃은 트라우마를 간직한 메이가 새로운 사랑에 빠져들면서도 두려움과 죄책감에 발을 빼는 모습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아쉽다. 인물들의 감정변화를 사려깊고 따뜻한 눈으로 잡아내는 것이야말로 허진화 감독의 최대 장점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메이의 상처와 치유를 상징하는 자전거는... 글쎄다. 물론 영화적 장치로서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지만, 너무 클리셰적인 면이 있다. 시나리오의 한계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좀더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인물들의 배치와 배우들의 호흡은 좋다.(되돌아보면, 허진호 감독은 늘 당대 최고 스타급의 남녀배우를 출연시킨다.) 로맨티스트로서의 정우성의 매력은 여전하고 청순한 외모를 가진 고원원의 모습도 아름답다. 제법 비중있는 조연으로 등장한 김상호의 연기도 과하지 않고 중심을 잡아준다. 굳이 유창할 필요가 없는, 영어를 '외국어'로 배운 인물들이기에 영어연기가 어색하지도 않다. 정우성의 발언을 빌리자면 송강호나 설경구가 연기할 때랑 달리 정우성이 영어를 말하면 관객들은 '얼마나 잘하나 보자'는 성향이 강한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허진호 감독이라는 기대감이 어느 정도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호우시절은 충분히 아름다운, '허진호의 영화'이다. 좋은 재료 원래의 맛을 잘 살려 만들어낸 자극적이지 않은 요리 같은 영화. 어떤 이들에게는 신선하지 않다고 느낄지는 몰라도, 이만큼도 못하는 영화가 아직 대부분이다. ac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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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등록된 덧글
역시 맞구나.
반가우이..
by 정용수 at 07/30 용수야 나 맞다 ^^; .. by acro™ at 07/20 acro ?? 혹시, 제가 아.. by 정용수 at 07/19 저의 어린 시절을 지배했.. by CozyrooM at 07/15 신랑 라인보다 신부 라인.. by CozyrooM at 07/15 아크로님... <시대정.. by CozyrooM at 07/02 어우 무서워라. 암튼 아.. by CozyrooM at 06/09 아름다워라. 그 누가 감.. by CozyrooM at 06/16 굉장히 현실적인 리스트.. by LND at 06/01 곧 라오스 갈 예정이라 .. by 지현 at 01/29 skin by 이글루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