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있는데 누가 자꾸 벨을 눌러서 이게 뭔가해서 일어나 봤더니 앞이 뿌옇더군요. 아내가 음식물을 가스불에 올려놓고 그냥 자는 바람에 연기가 난 것이었습니다.. 사골국물낸다고 뼈를 잔뜩 올려놓은거라 정말 연기가 화재 영화의 한 장면처럼 온 집에 가득찼더군요. 지나가시던 분인지, 다른 집인지는 모르겠지만 연기나오는거 보고 신고해주셨다고....
곧이어 삐뽀삐뽀 소리내면서 소방관 아저씨들이 달려오시고......
그게 새벽 3시 30분이었으니 동네사람들 다 깨우고 완전히 민폐였지요.
놀라기도 놀랐고 창피하기도 창피하고 다른 분들한테 죄송하기도 하고.....
그때부터 꼬박 샜습니다.
문자그대로 온집안에 가득 배인 냄새때문에 머리도 아프고 지금 입고 있는 옷에서도 계속 냄새가 올라오네요.
이거 어떻게 빼야할지 모르겠네요.
그 소동이 지나고, 놀란 아내를 재운 후 그냥 컴컴한 마루에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하마터면 이 공간을 전부 불태울 뻔 했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요.
새삼 내가 참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이구나 싶기도 하고, 이 집을 참 좋아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놀램이 지나간 자리엔 온갖 상념이 대신 자리를 비집고 들어오더군요.
그대로 맥주를 홀짝이며 빌리 홀리데이를 들었어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음악CD로 만들어놓은게 있더군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는건 제가 빌리 홀리데이를 평소에 전혀 듣지 않거든요. 아니 이전엔 아예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해야될 겁니다. 그냥 유명한 재즈 보컬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었으니 그 앨범을 왜 CD로 구웠는지는 전혀 기억이 안나거든요. 따라서 당연히 앨범 제목도 모르고 담겨져 있는 노래 제목들도 전혀 몰랐죠. 사실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빌리 홀리데이의 음악에 대한 평 중 - 아니 빌리 홀리데이뿐만 아니라 누구에 대해서도 - 가장 멋진 것은 아마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녀의 노래에는 몸 속 깊은 곳에서 자연히 배어 나오는 원액같은 것-그것은 우리의 존재 이유에 깊이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이 들어 있어서 그것이 청중들을 압도하고, 감싸 안고,도취시키고, 완전히 뻗어 나가게 하는 것이다.
-중략-
이따금 밤에 재즈를 들을 수 있는 바에 가면 버브 시절의 빌리 홀리데이 노래가 흘러 나올 때가 있다. 그녀의 그런 노래-가령 <올 오아 낫싱 앳 올>-를 들으면서 위스키를 마시다 보면, 왠지 나 혼자만이 중력이 다른 해저나 그 어딘가를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무척 깊은 곳이어서 위로는 올라갈 수 없고, 제대로 걸음을 옮기기조차 힘겹다. 그래서 그저 위스키 잔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 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by 무라카미 하루키 中 -
하루키의 인상깊은 찬사에도 불구하고 그전에는 들은 적이 없었던 빌리 홀리데이의 보컬이었고 요즈음 제 생활패턴(음악적 취향의 문제가 아닙니다.)을 생각하면 앞으로도 그렇게 자주 들을 것 같은 음악은 아닐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고작 한 음반만을 들은 아무것도 아닌, 그저 우연히 흘려들은 감상자의 입장에서는, 빌리 홀리데이의 음악을 듣기에
오감 중 가장 빨리 무뎌지는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코 끝에선 여전히 매캐한 연기가 느끼지고 환기를 위해 모든 문을 활짝 열어놓아 새벽녘의 거센 바람이 지나가는 썰렁한 거실도 그리 나쁘지 않은 공간이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되게 된 상황은 가슴이 철렁할만큼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다시 한 번 그런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좀더 안전한 계기로 말이죠.
ac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