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생각하는 사랑영화 Best 10...


지지난주 였나? 씨네21 창간 기념으로 1995 - 2008 까지 걸작영화를 국내, 국외 평론가, 국내 감독에게 설문조사 받은 기획기사로 올렸었다. 하여, 나도 내 나름의 영화 best 10을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내가 평론으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도 아니고 이론적인 토양도 부실하기 짝이 없으며(아예 없다고 하는게 낫겠다), 밥은 굶어도 영화를 봐야겠다는 씨네필의 열정은 커녕 밥 사준다면 보던 영화도 망설이지 않고 꺼버릴 인간인지라 여기서 뽑는 영화에 대해 굳이 동감을 얻을 생각은 없다. 그래서 영화도 사랑영화로 한정했다. 예를 들어 평론가들이 극찬한 허우샤오시엔의 '남국재견'같은 영화는 본 적이 없고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은 솔직히 고백컨데 보다가 잤으니 내가 감히 어찌 '모든 영화를 통틀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지극히 개인적인 선호일 뿐이고 그저 생각해봤다는데 의의를 둘 뿐이다. 하긴 세상 어떤 사랑이 안그렇겠는가.


1위. 화양연화(花樣年華 : In The Mood For Love, 2000)



오늘 언급하는 영화는 그저 머리속에서 생각난대로일뿐 순위는 없다. 하지만 이것만은 말하고 싶다. 화양연화는 최고라고. 살아간다는 것은 기억과 상처를 봉인해가는 과정이라고 하던가. 나는 그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직접 보고 싶어 앙코르와트까지 갔었다. 혹시 왕가위는 알았을까? 영영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 같은 앙코르와트의 돌들이 사실은 부스러지기 쉬운 사암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언젠가는 무너져 내려버릴 것이라는 것을.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고 그 사랑을 기억하는 사람들마저 모두 사라진다면 그때 그 봉인되었던 사랑는 어떻게 될까? 손 닿을 곳에 있었지만 끝내 내밀지 못하고 놓아보내야 했던 그 회한의 아린 이야기는.. 그때도 세상은 여전히 사랑을 이야기할까? 아마도... 어쩌면... QUIZAS QUIZAS QUIZAS..


2. 비포 선 셋(Before Sunset, 2004)



이제부터는 무순으로 그냥 써보련다. 사실 재미는 비포 선 라이즈가 더 있었다. 더 신선했고 더 상큼했다. 더 귀여웠다. 하지만, 극적 장치도 없고 모호하게 끝나버린 결말에도 불구하고 나는 비포 선 셋이 더 마음에 든다. 9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청순하던 줄리 델피도 어느덧 세월의 흔적이 엿보이고, '오 마이 캡틴'을 외치며 책상 위에 올라설 것 같은 앳됨이 남아있던 에단 호크의 이마에도  굵은 주름이 새겨졌지만 그것조차도 반가웠다. 그만큼 영화도, 배우도, 그리고 나도 나이를 먹었다. 그들만큼이나 나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다. 영화를 보며 그들과 그런 얘기들을 하고 싶었다. 비포 선 라이즈를 보던 극장에 단체관람을 와서는 키스신이 나올때마다 소리를 질러대며 몰입을 방해했던 그 여고생들도 어느덧 아이 엄마가 되었겠지. 그들의 9년은 어땠을까?


3.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 2005)



이안이 가지고 있는 스펙트럼의 넓이는 어디까지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세상을 넘지 못했지만, 세상은 사랑을 누르지 못한다. 사랑은 이성이나 의지의 대상이 아니다. 그저 사랑이다.


4. 봄날은 간다(One Fine Spring Day, 2001)


소년은 사랑을 통해 성장하지만 여인은 여전히 뿌리내리지 못하는 화분만을 옮겨심는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지만, 그렇게 사랑을 얘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여라. 생각날 때마다 술 마셨더니 술 마실때마다 생각난다지. 푸르름한 새벽빛 속에 날 기다리던 네가, 아직도 거기 그렇게 서있을 것만 같아. 하기야 사랑이 처음부터 쉽기만 했다면 우리 어찌 그렇게 많은 사랑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사랑이 떠나도 여전히 봄날은 화사롭고 그 연녹은 푸르르기만 하다.
나는 아직도 종이에 손을 베면 머리 위로 치켜든다.


5. 러브레터(Love Letter, 1995)


해마다 겨울이면 이 영화를 본다. 법정 결혼연령이 중학생으로 낮아지지 않는한 최고의 첫사랑 영화로 오래오래 기억될 영화. 이와이월드가 유치하다는 사람도 있을테지만 이런 감수성은 아무나 만들어내지 못한다. 비교해서 정말로 미안하긴 하지만, 나름대로의 수작이라 할 수 있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은 도저히 닿을 수 있는 영역에 도달해있다.(심지어 O.S.T 마저 더 좋다)


6.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4)


"망각한 자는 복이 있나니, 자신의 실수조차 잊기 때문이라” (Blessed are the forgetful, for they get the better even of their blunders)
사랑이 정말 아프고 쓰린 상처투성이의 감성소모일까? 잘 찾아봐. 당신의 사랑안에 숨어있는 보석같은 순간들을.


7. 러브 액츄얼리(Love Actually, 2003)


나는 더이상의 크리스마스 영화를 보지 못했다. 명가의 품에서 솜씨좋은 장인의 손길로 태어난 사랑스런 영화. 천의무봉, 너무나 깔끔한 모범생이라 얄밉기도 하지만 도저히 미워할 수 없다.  


8.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ジョゼと虎と魚たち: Josee, The Tiger And The Fish, 2003)


고마워, 날 세상으로 꺼내어줘서.
고마워, 나에게 사랑을 알게해줘서.



9. 펀치드렁크러브(Punch-Drunk Love, 2002)




작은 이야기일수록 재능을 시험받는 법. 이야기꾼으로서의 폴 토마스 앤더스의 재기발랄함이 사랑스런 캐릭터를 통해 반짝반짝 빛난다. 사랑은 힘이 세다.


10. 첨밀밀(Comrades: Almost A Love Story, 甛蜜蜜, 1996)



삭막한 현실에서 눈 돌리지도, 주인공들을 미화하지도 않고 담담히 그려내면서도 이렇게 따뜻한 사랑이야기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 그 공원, 녹은 초콜렛의 풋풋한 쑥쓰러움과 미키 마우스의 귀여운 애교는 아직 내 맘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아아.. 여소군 동지. 당신, 지금까지 행복하시죠??





마땅히 넣었어야했지만 까먹고(혹은 사정상) 못넣은 허진호 감독의 모든 영화들, 왕가위의 모든 영화들, 클로져,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쥬드(아마 가장 현실적이고 서늘한 사랑이야기가 아닐까), 위대한 유산(Great Expectations) 등등에게 사죄의 말씀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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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ro™ | 2008/04/28 16:22 | 책, 영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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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LND at 2008/06/01 23:58
굉장히 현실적인 리스트네요. ㅎ_

저도 하이퍼텍 나다에서 데이트한다고 다큐멘터리 영화보다가 쳐 잔 뒤로 그 아가씨에게 소식이 없습니당 ㅎ


Reality Bites 검색하다가, 글이 너무 맛깔나셔서 저도 모르게 조금 더 훝고 있습니다.

저도 한 십 년 뒤에 화양연화를 다시 보면, 그 때 보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보이게 될까요..
Commented by CozyrooM at 2008/06/16 21:07
아름다워라. 그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으랴,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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