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여일(始終如一)의 아름다움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이맘때쯤 충주의 한 장애어린이 시설로 자원봉사를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들을 근처 온천으로 데려가 같이 목욕하고 놀아주는 행사였는데, 제가 맡았던 아이는 이미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 덩치도 좀 있는데다가 장애정도도 커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봉사자 한 사람당 한명씩 맡아서 씻겨야하는데 처음이어서 그런지 쉽지 않더라구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는 안고있던 팔이 다 후덜거리더군요.

그런데, 그곳에서 봉사하던 사회복지사가 어디서 본 듯한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저 사람을 어디서 봤드라..
아 하~ 그 사람은 신입생 시절 한 정치조직에서 같이 활동했었던 사회복지학과 사람이더군요.
저야 그때나지금이나 조직생활에 잘 적응못하는 인간인지라 맨날 세미나있으면 도망다니고 했던터라 그저 얼굴만 알고 마주치면 인사정도나 하는 사이였지만요.

지금도 크게 차이는 없겠지만, 그때 대학교 1, 2학년의 정치참여라는 것은 어떤 거창한 이념이나 치밀한 논리로 무장한 것이라기보다는 모순된 현실을 바꾸는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은 소박한 동기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자본의 집중이 갈수록 고도화되는 사회에서 소외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구조적 모순을 조금이라도 바꾸고자하는 순수한 고민들이 사람들을 모이게 했던거죠.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군대를 다녀왔고 복학하고 취업하고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열정을 지혜로움으로 성숙시키지 못했고, 참여의 당위와 안주의 유혹 사이에서 고민하는 척 했지만 사실은 현실에 이끌려 따라가는 그런 생활이었죠. 그때 당시에도 저는 불만이 많았습니다. 회사에 대한 불만, 장래에 대한 고민 등등으로 날마다 사표를 내네마네하며 끙끙거리던 시절..

하지만 그 친구를 보고 나니 참 많이 부끄러워지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고시공부로, 금전적 보상이 충분한 직장으로 현실을 찾아헤멜때 그 친구는 처음에 품었던 의지를 잃지 않고 계속 진전하고 있구나. 내가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직장에 다닌다고, 급여가 넉넉하지 않다고 불평하고 있을때 그 친구는 작은 곳에서 계속 자신의 뜻을 펴고 있구나. 사회복지사의 적은 급여를 견디며 묵묵히 일하고 있구나..

꿈은 바뀔 수도 있고 현실과 타협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비난의 도마에 올려놓기에 우리 스스로는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잊지 않는다는 것, 작게나마 마음 한 구석에 그 자리를 비워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요.

저를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헤어지며 아이들과 함께 손을 흔드는 그 친구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언제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그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네요. 그때는 저도 스스로 부끄러움없이 함께 웃었으면 좋겠습니다.



acro™

by acro™ | 2006/11/17 23:48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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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CozyrooM at 2006/12/09 18:41
뜻은 잘 품고만 있어도 어딘가에서 피는 것 같아요. 어떤 사람에게는 장미꽃같이 굵직하게, 어떤 사람에게는 안개꽃깥이 넓게...

악흐로 옹, 힘!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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