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가서 먹은 것들

미각이라는 게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고 
각자의 추억과 사연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분야이므로
이곳이 궁극의 맛집 도장 꽝꽝꽝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겁니다.

맛집이라고 추천받아서 갔더니
취향이니 존중해주겠다만 용서는 하되 잊지는 않겠다 수준이 아닌 이상,
왠만큼 레벨이상이면 그 다음부터는 개인의 취향에 달린 것인데 이번에 갔던 곳들은 그럭저럭 다들 괜찮았던 것 같아요.

강원도가 지역 특성상 음식문화가 상대적으로 빈약한 편이고
속초, 특히 여름의 속초는 관광객이 넘쳐나는 곳이니만큼 너무 큰 기대는 금물이고...
속초지점 분들한테 추천받았고 인터넷 블로그 등에도 많이 나와있는 집들입니다.

1. 샘메밀막국수

- 속초 막국수의 대명사는 실로암 막국수인데요. 가보면 엄청나게 많은 유명인사들의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죠. 속초공항 옆이라 속초공항이 영업할 때는 정관계의 거물들도 자주 날아가서 먹었다는 곳이죠. 특히 고 정주영씨가 엄청난 돈을 약속하며 서울로 옮겨오라고 했지만 거절했다는, 검증은 안됐지만 전설적인 일화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시는 터라 관광지 속초에서 일요일에는 영업을 안하는 엄청난 배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사람들이 흘러넘치는 곳이죠.

이 실로암 막국수 할머니가 지금은 장사를 접으셨어요. 샘메밀막국수과 실로암 막국수과의 관계는 온갖 설이 분분합니다. 할머니가 실로암을 넘겨줄 때 계속 주방을 봐왔던 큰며느리가 나와서 차린 집이라는 설도 있고 다툼이 있어서 나왔다는 설도 있고 그냥 다른 집이라는 설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직접 들었다, 자기의 먼 친척이다며 갖가지 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어쨌든 실로암 막국수는 옛날 그 맛이 아니다라는 사람들이 있고 샘메밀막국수가 그 대안 중의 하나인 것 같더군요. 물치항 근처에 있고 실로암 막국수가 그렇듯이 비빔스타일로 반쯤 먹다가 동치미 국물 부어 물국수처럼 먹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막국수 6천원이고 두부와 수육도 메뉴에 있습니다.

2. 점봉산 산채비빔밥

- 이 집은 거의 15년 전, 카드도 안받던 시절부터 발굴했던 곳인데 이번 추천리스트에도 있더군요. 여러가지 버섯과 산나물이 참 맛있습니다. 정식이 1.5만원, 비빔밥이 1만원인데 나물을 안좋아하는 저도 맛있게 먹었고 아내도 '나물이 맛있게 느껴진 적인 처음'이라며 좋아하더군요. 매장 안에 말린 버섯이나 나물들도 팔고 있습니다.

3. 순두부

- 학사평 순두부촌과 그 근처에 많은 '할머니'집이 있습니다. 모두 못해도 '30년 전통'과 '원조'를 붙이고 있는데요. 대략 그렇게 특정 음식을 파는 곳이 촌을 이루고 있는 곳이면 그 맛도 크게는 차이가 없는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바닥을 다 평정하는 킬러음식점이 있다면 모두 거기로만 갈테니까요. 저는 '최옥란 순두부'와 '김정옥할머니'집을 갔었습니다. 그밖에 김영애 할머니, 김정숙궁중해장국 등등도 유명하니 적당히 이름있는 집이면 크게 실패는 안할 것 같습니다. 가격은 순두부, 황태해장국 등이 8천원 수준이고 두부집이니 당연히 두부와 해물파전 등도 있습니다. 산채비빕밥을 같이 하는 집들도 있는데 산채비빔밥은 점봉산 산채비빕밥이나 목우재터널 근처에 있는 설악스케치 등 산채비빔밥 전문집이 아무래도 더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입니다.(먹어본 것은 아니니 편견일 수도 있지요.) 그냥 순두부를 시키면 양념이 안된 하얀 순두부가 나오니 서울의 순두부찌개를 생각하시면 매운 순두부를 시켜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순두부보다 더 좋아하는 비지찌개가 메뉴에 없어서 좀 아쉬웠습니다.

4. 물회

- 동해안은 포항서부터 속초까지 물회가 유명하죠. 속초쪽은 물회에 밥 대신 국수사리를 함께 먹습니다. 비빔국수를 먹는 기분이 나죠. 왠만한 횟집은 모두 물회를 합니다. 가격도 대략 1만원 선이고요. 제가 먹은 곳은 송지호해수욕장에 있는 만성횟집이라는 곳이었는데 2인분 이상을 주문해야된다는 제약이 있었습니다만 양도 많고 새콤달콤한 양념맛도 좋았습니다. 들어가는 회는 세꼬시 형태로 나오더군요. 물론 1인분만도 먹을 수 있는 횟집도 많이 있고 오징어물회, 잡어물회 등으로 구분되는 곳도 있으니 취향껏 골라 먹으시면 됩니다. 모든 맛을 신맛과 매운맛으로 정리해버리는 초장범벅의 한국식 회 먹는 법을 일본인들은 기겁을 한다지만 어차피 물회가 고급 회맛을 즐기려고 먹는 것도 아니고 귤도 회수를 건너가면 탱자가 되는 법, 후루룩 물회 한 사발이면 속도 시원하고 좋죠.

4. 소고기

- 어쩌다보니 먹게 되었습니다. 미시령 한우마을에서 가져온 고기라던데 맛은 좋았습니다만, 왜 굳이 속초에서 고기를 먹었냐고 하시면 뭐 딱히 할 말은 없군요. 예, 정말로 어쩌다보니 먹게 되었습니다.

5. 속초 중앙시장

- 제주에는 동문시장, 속초에는 중앙시장이죠. 관광객들도 현지인들도 많은 시장입니다. 

중앙시장에서는 닭강정과 호떡을 사는 것이 관습헌법입니다. 

사전지식없이 가신 분들은 너도나도 닭강정 박스를 들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놀라게 되는데요. 심지어 한 사람이 네 개, 다섯 박스씩 사가는 모습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중앙시장 3대 닭강정이 만석닭강정, 중앙닭강정, 시장닭강정인데 원조가 만석닭강정이라지만 세 군데 모두 엄청난 대기줄이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닭강정 하나 사먹자고 1시간씩 기다리고 있다보면 억울해서라도 4-5박스씩 사게 될 것만 같습니다. 식어도 맛있다고 전국에서 택배로 시켜먹으시는 분들도 많이 있는데 8월에는 방문구매자가 너무 많아서 택배는 못한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가게분들을 보면 거의 혼이 나가서 넋이라도 있고없고의 상태로 일하시고 계시더군요. 양념닭강정이 1.5만원인데 실제로 먹어보면 자잘한 조각들이고 닭보다 튀김옷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 그게 포인트인 것 같더군요. 양념치킨은 대체로 식었을 때 특유의 고기냄새로 인해 맛이 없기가 쉽상인데 이 닭강정은 튀김옷이 바삭하고 양념도 맛있어서 실제 식은 뒤에 먹어봤는데도 괜찮더군요.

씨알찹쌀호떡은 부산의 남포동 호떡집에서 배워왔다는 아저씨가 하시는 곳입니다. 기름에 튀겨서 설탕이랑 씨알(뭔 씨알인지는... 아무도 해바라기?) 넣어주는 호떡입니다. 바삭하고 찹쌀로 쫀득한 맛에 먹는 호떡이죠.

솔직히 둘 다 그냥 먹을만하기는 했지만 에버랜드 T익스프레스보다 더 긴 줄을 서가며 먹어야할 맛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가셔서 줄 길면 그냥 포기하시고 닭강정은 나중에 택배로 시켜드세요. ㅎ

중앙시장 지하에는 회센터가 있습니다. 중간중간에 젓갈과 건어물 파는 곳이 있고요. 물론 시장 여기저기에 젓갈집과 건어물집은 많이 있습니다.

회센터에서는 직접 드시고 가셔도 되고 포장해 가셔도 됩니다. 속초가 관광지이니만큼 싸다고는 말할 수 없겠습니다만 그렇다고 엄청 비싼 것도 아니고, 특히 대포항이나 동명항 등 밖에서 파는 집들보다는 저렴해서 많이들 찾습니다. 와이프가 회를 안먹어서 제대로된(?) 횟집을 갈 수 없었던 저도 2.5만원짜리 작은(그래서 맛은 별로 없는) 광어 한 마리 회 떠서 숙소가서 먹었습니다.(실수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초장도 안넣어주더군요. 췌) 여름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바빠서인지 좋은 서비스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관광지'임을 감안하고 가셔야 맘 상하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젓갈도 꽤 저렴합니다. 명란젓이 대략 1kg에 2.5만원, 상품은 3만원 선인데 3만원짜리는 확실히 알이 톡톡 터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낙지젓도 1kg에 2만원선입니다. 500g단위로도 팔고요. 참고로 오늘 롯데마트 갔더니 명란젓 1kg에 5만원 하더군요. 

역시나 젓갈도 안먹는 아내의 눈치를 무시하고 명란젓, 낙지젓, 청어알젓 등등을 사와서 든든한 밥도둑님들을 확보했습니다. 열심히 먹다가 다 못먹으면 얼려두고 계속 먹어야죠. 

개인적으로 중앙시장에서 제일 만족했던 것은 감자전이었습니다.
2천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별다른 내용물도 없이 그저 갈은 생감자와 약간의 부추만으로 부친 전이지만 쫀득하니 참 맛있더군요.

6. 오징어순대

- 속초에 갔는데 그래도 오징어순대를 안먹고 올 수는 없죠.(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 이건 오늘날 점심 때 아바이마을가는 갯배타는 곳에 있는 진양횟집에서 먹었습니다. 오징어 순대로 엄청 유명하죠. 유명한 곳이니만큼 가격이 좀 있더군요. 오징어순대 2마리에 1.5만원, 먹물순대는 1.7만원입니다. 중앙시장에서는 2마리 1만원이면 포장이 가능합니다. 가격대비로는 모르겠지만 맛 자체는 괜찮았습니다. 

헥헥
그밖에 생대구탕집도 엄청 맛있었고 먹어보지는 못했지만 곰치국 하는 곳도 많이 있습니다.
생선구이(88생선구이가 유명)랑 아바이순대(이건 속초시장에도 순대촌이 있고 아바이마을에도 많이 있습니다.)를 못 먹고 온 게 좀 아쉽네요.

속초는 관광지라 물가가 좀 비쌉니다. 그런데 음식점들 가격 오른 거 보면 제각각인 것 같아요. 최
근 몇 년 사이에 1만원에서 1.5만원으로 오른 집이 있는가하면 
15년전에 8천원이던 메뉴가 지금도 1만원으로 밖에 안오른 곳도 있고 그렇네요.

먹으려고 간 건 당연히 아닌데 어케보니 먹고 온 기억밖에 없네요.

올해 휴가철 다 지났으니 내년에 참고하세요;

 

acro™


by acro™ | 2011/08/15 23:05 | 이런저런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책 본연의 역할은 인테리어이다.


'책 본연의 역할은 인테리어이다.
가지고 있으면 어쩌다 볼 일도 있고....'라고 언젠가 트위터에 올린 적이 있다.

내 경우는 한 달에 대략 5-7만원 정도 구입하니까 그렇게 책중독자라고 할 수는 없을 거고
일단 '대부분은' 읽으니까 완전히 인테리어 용도만은 아니긴 하다.

딱히 책을 모으는 타입은 아니지만 어쩌다보니 특정 작가의 책을 전부 구입하는 경우가 있다.
내 경우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에쿠니 가오리인데 '기왕 여태까지 샀는데 그냥 이번 신작도 다 사자'라는 수집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어쩔 수 없기는 뭐가 어쩔 수 없는지) 모으고 있다.

개인적으로 하루키 문학의 장점은 단편소설과 에세이들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제일 좋아하는 책이라면 '먼 북소리'인데 하루키 좋아한다는 사람 중에 '먼 북소리'가 제일 좋다는 사람은 아직까지는 못봤다. 어쨌거나 가벼운 내용의 책이니까. 소설 중에는 단편집들이 좋은데 본인이 장편소설을 더 좋아하는지 최근에는 전혀 못 본 것 같다. '오후의 마지막 잔디밭'이나 '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같은 책은 꽤 좋았는데 말이다. 꼭 하루키의 광팬인 건 아닌데 어쩌다보니 몇몇 소설은 영문판으로도 가지고 있다. 하긴 떡하니 발간된 책을 모두 구입한 상황이니 딱히 부인하지도 못할 판이다.
그러니까, 집에 누가 와서 보고 '하루키를 좋아하시나 보네요'라고 하면 대답할 말이 꽤나 난감해질 것 같다. 물론 기본적으로 읽어볼만하다고 생각해서 구입한 것은 사실이니 '안좋아해요'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건 아닌데 어쩌다보니 다 구입했네요'라고 했다간 '이 인간은 돈이 남아나서 아랫돈이 윗돈을 막 치고 올라오나보지?'라고 생각할 것이 뻔하니 난처하다. 그냥 팬하는 수 밖에 없다.

이런 난처함은 에쿠니 가오리 쪽으로 하면 한층 더 심각해진다. 역시나 장점이 있고 읽을 만 하다고도 생각하고 있고, 실제로도 편하게 읽혀진다는 점에서 좋아하지만, 그렇다고해도 여태까지 나온 책을 다 구입할 만큼은 아니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는 우주의 법칙에 따른 귀결인지 어느새 책장 한 줄을 모두 에쿠니 가오리의 책으로 채우고 있다.(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책은 마미야 형제이고 그 다음은 호텔 선인장인데, 사실 호텔 선인장 이후에 사서 읽은 책 중엔 인상적인 게 거의 없다.)


아아.. 어쩌다 이런 운명의 장난질에 걸려든 걸까?






아, 그래도 디킨스 전집은 꼭 구입하고 싶다.

물론 영문판으로, 그러니까 인테리어용으로.


acro™



by acro™ | 2011/05/25 13:10 | 책, 영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